11월의 절반 그 중턱에서

앉아서 천리 밖을 본다고 했던가?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로 들을 수 있으니 천리안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보기의 방식은 일방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니 '훔쳐보기' 같은 관음증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로 그렇게 휩쓸려 정보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 대다가 익사하듯 가라앉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곤 수면으로 솟구쳐 올라 물 밖으로 걸어나와 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책을 보다가도 금새 다시금 이런 네트워킹에 현혹되고 있노라면 이건 정보가 아니라 '노이즈'로 가득찬 쳇바퀴에 갇혀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 하루도 기도로 시작했었어야 했는데 아무런 의탁없이 나 스스로 걸어가겠노라 애썼던 것은 아닌가 다시 생각해본다. 

논문을 쓰고 있다. 영어로 된 책들을 읽어나가려니 속도가 좀체 나지 않는데다가 한글을 읽는 것처럼 속속들이 의미가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않아 책을 읽는 오롯한 맛이 적다. 그러나 속도가 나지 않으니 더 세세히 읽어야 하고 책 읽는 재미가 아니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읽어나가며 천천히 떠오르는 큰 줄기를 더듬어나가는 것도 새롭다. 이번 달 안에는 한글로라도 완성해야 영어로 옮길 수 있으리라. 단번에 영어로 쓰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난제이므로 시간은 더욱 소요되고 마음은 갈수록 급해진다. 그럴때 더욱 기도하고 주께 의지하고자 한다. '모든 일에 그를 인정하면 갈 바를 정해주실 것'이다. 실은 어려운 일이다. 잘 되지 않는 일이다. 목사님이 멕시코로 가신다. 밴쿠버를 떠나 더 어렵고 힘든 곳으로 기쁜 마음으로 가신다. 남겨진다는 것, 다짐을 자연스레 가슴에 얹게 되지만 속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곧 그렇게 되겠지. 

시간이 되면 김훈의 <흑산>을 너무나 읽고 싶다. 며칠 전 한국에서 오신 장모님께 부탁하려다 말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그러니 다시 마음을 다질 때다. 이번 여름 비오듯 구슬땀을 흘리며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며 만들어준 시간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지금은 너무나 나태하고 게으르다. 

어떤 위안 미치광이의 고해성사



Egloos seems not to support for uploading of BlackBerry users. My Korean script is broken so I have to write in poor English.

This picture is taken in park when I find down casting view by camera by chance would be beautiful than expected. Unconscious directing towards landscape often make curious results. 

Comfort hardly visits but this is real and so touching. 

My pastor in our church is supposed to leave for Mexico soon. Unwittingly tears shed on my cheeks yesterday. I pray for his missionary travel in Mexico.

오랜만에 다시 쓰는 블로그.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더니 내 블로그인데도 어색하고 막 그렇네요.
벌써 한국을 떠난지 1년도 더 지났습니다. 블로그 친구분들도 다들 각기 자기 길을 찾아 떠나고 그다지 많이 남아있진 않네요. 그래도 '카'님 블로그는 언제나처럼 정겹고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들이 있어 참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분들도 잘 계시지요?
밴쿠버에 겨울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스산한 바람이 불며 오후가 되었나싶으면 벌써 어둑어둑해집니다. 위도가 49도 정도이니 처음에는 블라디보스톡이나 하얼빈 정도라도 되나 했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위에 붙어 있더군요. 그런데도 날씨가 그다지 춥진 않아서 살기에는 좋다고 합니다. 저도 추위를 싫어해서 나쁘진 않습니다만, 겨울비가 장맛비처럼 하염없이 내릴 때면 내가 확실히 어딘가로 떠나 있음을 실감합니다. 봄을 넘어 여름으로 치달아갈 때에도 저 멀리 록키 산맥 꼭대기에는 여전히 하얀 고깔같은 눈들이 쌓여있고 들판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올 때도 저는 이방인입니다.
오늘 다시 받은 비자로 임시운전면허증을 다시 발급받았습니다. 두달 여 만에 다시 잡은 운전대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싶었지만 결국 쌀도 떨어지고 냉장고는 비어가는 관계로 식료품 쇼핑에 나섰습니다. 여기는 TV도 소설책도 만화책도 '소녀시대'도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 생각이 아직 그리 많이 나진 않습니다. 여름에 필동 면옥이, 우래옥이 사무쳤던 적이 있었지만 금방 극복했습니다. 횟집이 생각나면 초밥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초밥집에 가진 않습니다. 비싸거든요. 누군가가 보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 곳의 울창한 숲이 우거진 도심 속 공원이나 바닷가를 걷다가 문득 그럴 때도 있습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비가 들이쳐 우산 속을 적실 때도 이제 여기에는 나와 아내 그리고 곧 우리에게 올 아이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신 그 분을 함께 생각합니다. 
오늘 내린 비 속에서도 말입니다.
  


무지개




밴쿠버의 까마귀 나무


내가 사는 동네에는 까마귀들이 참 많다. 한참 전에 찍은 핸드폰 사진을 이제서야 읽어들이니 새삼 그 때 이 녀석들을 한동안 찍느라 어둑어둑한 길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까마귀들, 한국사람들은 흉조라며 싫어했겠지만 일본에선 오히려 길조라고 하고 캐나다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듯 하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 곁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까마귀들과 함께 지내노라면 이젠 이놈들이 그냥 집앞에 사는 청설모나 갈매기 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문화에 따라 같은 새도 다르게 여기는 이런 차이를 떠올리니 어제 종교학 벌레님의 블로그에서 읽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한 글이 생각난다. 내가 예전에 썼던 그러니까 신앙을 가지기 전에 봤던 '비평'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려했으나 이미 내가 기고했던 사이트는 죽어버려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썼었다는 기록만 포털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도 내가 썼던 글을 어디에다 보관해두었는지 금방 생각이 나지 않으니 내가 쓴 글을 나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에 썼던 글의 주요한 내용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물신주의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수난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 가지는 종교적 '외설성' 혹은 영화적 '물신주의'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은데 더 이상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긴 뭐 가끔 내가 사는 주소도 헷갈리는 판에 뭔들 제대로 기억할까...

아주 오랜만에 또 하나의 포스팅을 올린다. 번듯한 홈페이지 하나 갖는 것이 목표였으나 그 목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편집을 마쳐야 할텐데... 진도도 느리고 산적한 문제가 갈수록 쌓인다. 편집기사에게 맡길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다음 번을 위해서는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 겨우 컴퓨터도 새로 장만하고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도 인스톨하고 연습삼아 했던 다른 작업도 대충 마쳤으니 이제 정말 여기에 집중해야 할 때다.

요즘 드는 생각

갈수록 종교를 가장한 무신론이 점점 더 세상에 넘쳐나는 듯 하다.

는 것이다.

끝.

최고은 작가의 영면을 위하여

새해 인사를 드리고 나서 애써 무덤덤하게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제 밤 이 통탄할 만한 소식을 듣고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웬만해선 잠을 못이루는 일이 없는 나로선 그제 밤 잠을 멀리 밀어내고 있는 내 머리속 분노와 한탄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주는 한가닥 위안으로 인해 머리 속이 지나치게 맑아져만 갔다. 밴쿠버라는 낯선 땅에서 여전히 적응 중이긴 하지만 한국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외면하고자 떠나왔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아직 한국에 있었다면 그래서 한달에 40만원 가량 주는 강의와 이제는 원고료도 주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는 글을 계속 쓰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친구는 도망가지 말고 당당히 맞서 싸우라고 주문했다. 나 역시 도망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지 비정하리만치 냉엄한 현실 앞에서 지레 오금이 저리고 먹먹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계획일 뿐 올해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직 장담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컴퓨터를 어렵사리 장만해서 편집을 시작했지만 진도는 더디기만 하고 해야할 일들을 계획했지만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감당했었어야 할 고통이 얼마만한 것이었을지 짐작이 되었기에 시간이 지날 수록 나 역시 더욱 복잡한 심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 역시 글이라는 것을 썼던 자로서 텅빈 화면에 덩그러니 깜빡이는 커서가 무서웠던 적이 있다. 그 하얀 화면에 다 써진 텍스트를 환상처럼 보기도 했으리만큼 글이라는 것 역시 손가락 하나 하나가 정신활동과 맞물려 치밀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생산되지 않는 노동의 산물이다. 그런데 영화는 계약되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는단다. 내가 그나마 현장스탭이 아니었던 것이 다행이었을까? 그래서 현장 스탭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거나 영화제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토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질시했던 것일까? 현장을 모른다고...
그녀는 아마 스스로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배고픔과 병과 싸워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애도해마지 않는 가운데 간간이 섞여있는 비난 가운데 한가지는 왜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무려 5개의 시나리오를 써낸 작가였다. 말하자면 전업작가인 셈이다. 짧은 시나리오 하나를 쓰는데도 몇개월이 걸리는데 장편 시나리오를 5편이나 썼다면 그녀는 여기에 모든 것을 걸고 자신과 싸워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녀는 대략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영상원이라는 그래도 국가가 후원하는 국립영화학교에 서 게다가 재학 중에 자신이 연출한 영화로 상도 받았으니 그 순간 이미 축복과 동시에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이란게 그렇다. 상이란 공적으로 재능을 인정받음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 재능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증명해나가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저주와도 같은 운명의 덫처럼 스스로를 옭죄어 매고 만다. 재능을 가진 자는 차고 넘치나 노력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참된 재주를 가진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5편의 시나리오를 써낸 작가를 노력이 부족했다 폄하하는 것은 그를 다시 한번 모욕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녀는 그 시나리오에 자신이 그동안 보았던 현실과 읽었던 글과 보았던 이미지 그리고 들었던 이야기를 모두 이어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해냈을 것이다. 이것이 한푼의 값어치도 없이 최소한의 생계유지비도 못되었다면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로 계약했다면 그녀가 성실히 쓴 시나리오에 준하는 급여가 마땅히 지급되었어야 한다. 영화화되기로 결정되어야만 댓가가 주어진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녀가 제작자인가? 그녀는 제작사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고 작가가 쓴 시나리오들을 제작자는 제작하기 위해 배급사와 그리고 투자자들과 만나고 스탭들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매달 받던 돈이 끊기고 생활비가 모자라기 시작하면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생긴다. 우선 스스로가 초조해진다. 이것이 가장 큰 부작용이며 그러기에 주변에서도 그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대략 눈치채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생활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조금씩 고립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스스로가 그리고 세상이 함께 펼쳐가는 보이지 않는 막이다. 그녀는 이제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무언가를 계속 써간다. 그것이 그녀를 세상에 증명하는 최소한의 이유이므로 그녀는 열심히 썼을 것이다. 생활비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생계마저 유지할 수 없다면 우리가 무시로 쓰는 인터넷은 애시당초 끊겼을 것이고 패키지로 함께 쓰는 유선TV도 함께 끊기게 된다. 그리고 겨울철이라 가스비가 무시무시하게 많이 나오게 마련이므로 가스비를 감당키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겨울은 몹시도 춥고 길었다고 들었다. 어차피 집에서 취사를 하지 않는다면 가스공급은 없어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기는 끊기는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전기는 마지막까지 어디서 빌리든 해서라도 끊기지 않게 하려했을것이다. 밀린 전기요금 고지서가 쌓이다가 결국 그마저도 끊기는 순간 그녀는 차가운 전기장판 위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 그 때가 이웃집에 '찬밥과 김치'를 부탁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가스가 끊겨 밥을 해먹을 수가 없고 전기가 끊겨 차디찬 골방에 앉아서야 그녀는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녀는 갑상선에 문제가 있었고 췌장염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아마 그녀에게 단 한가지 잘못이 있다면 그녀가 영화판의 더러운 구조를 스스로 돌파하려고 그토록 열심히 시나리오를 써대고 한국의 차가운 현실을 온몸으로 싸워나가려 조용히 애썼다는 단 한가지 였을 것이다.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들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그녀는 영화제작사라는 폼나는 명함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취약계층으로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을 테고 젊디 젊은 청년이니 동네 쓰레기를 치우거나 잡초를 뽑아서 받는 얼마 안되는 공공근로 일에도 애시당초 제외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동사무소에서 쌀을 가져다 줄 수도 반찬을 가져다 주지도 않았을터이니 이는 분명 그 제작사 나아가서는 한국의 영화산업이 그녀를 죽인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가난한 독립영화인이 아니었다. 보통의 독립영화인은 자신의 직업을 별도로 가지면서 영화일을 해나간다. 그러나 그녀처럼 제작사에 소속된 시나리오 작가는 급여를 받는 전문적인 영화인이다. 그러니 외국의 경우처럼 얼마 이상의 일을 하면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 제도는 그녀에게 의미가 없다. 이는 분명 제작사가 당연히 지급했었어야 할 급여가 나오지 않아 생긴 일이므로 국가에서는 제작사의 대표를 구속해야 한다. 아마 그 제작사의 회계장부에는 어쩌면 작가에게 월급을 지급한것으로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한 댓가를 지급하는 것이 마땅한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 그리고 영화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상식을 너무 일찍 거둬들여선 안된다. 우선 상식적으로 왜 급여가 지급되지 않았는지를 따져보고 그 다음 그녀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국가 안전망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녀는 프로페셔널한 영화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 이외에 누구나 이름만 들어야 알만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말도 안되는 불합리한 경우에 처해 있음을 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유명한 감독과 배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나서 국가가 이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을 고민하고 제작사와 배급사 그리고 영화관이 이루는 독점체제는 그 다음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동안 이 마지막 테제를 생각해왔으나 한국은 가장 시급하고 상식적인 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이 모든 불합리와 싸워 혼자 절명해간 젊은이의 비참한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마친다. 

2011년 새해


올해가 시작된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때론 힘겹기도 하지만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세상은 둥글고 어디로 간다해도 '끝'은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어딘가 '종결'이 가능한 지점이 있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다.

새삼 모든 사람들에게 새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

멀리 있어 일일이 전화로 문안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길...

레프 마노비치 강연

 Visualization as The New Language of Cultural Theory

레프 마노비치 Lev Manovich 공개 강연

일시  2010. 9. 10. (금) 7pm ~ 9pm (강연 및 토의)
장소  아트센터 나비
수강료  무료
문의  김영주 ykim@nabi.or.kr / 02-2121-0925
 

<뉴미디어의 언어>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프 마노비치는 거대한 문화적 데이터베이스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인터랙티브하게 시각화시키기 위해 컴퓨터 기반의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이제는 인문학에서도 문화의 분석을 위해 과학의 분야에서 사용되었던 연구 방법론이나 기법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찾기 위한 실험은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그로 인한 사회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분석 방법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연구방법론에서 보지 못했던 문화 요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될 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강연자 소개

레프 마노비치는 미디어문화 이론가로서, Software Studies Initiative (UCSD and Calit2)를 2007년에 설립하고, 소프트웨어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 마이닝 data mining과 문화 데이터 셋을 실시간으로 시각화시키는 것에 대한 실험으로부터, 문화 분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NYU에서 실험심리학 학사를, 로체스터 대학에서 비주얼 문화 스터디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UC 샌디에이고의 비주얼 아트 학부에서 디지털 아트 및 디지털 문화의 역사와 이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다』 (2008), 『소프트 시네마: 데이터베이스 탐색』 (2005), 『뉴미디어의 언어』 (2001) 등이 있다.


옥희의 영화_오랜만에 본 영화 같은 영화 미치광이의 고해성사

<옥희의 영화>를 봤다. 지난 신디(Cindi)에서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도 봤다. 글쎄 예전처럼 전투적으로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더 평안히 넓게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발견하려 애쓰기보단 그저 다가오는 것들을 껴안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난 항상 더 많은 영화를 더 자세히 보지 않았던 것에 안달나 있었던 듯 하다. 지난 비디오떼끄시대의 B자 복사본들이 수없이 꼽혀있었던 '빛'부터 문화학교 서울의 세상 어느 곳보다도 휘황찬란했던 프로그램들까지 모조리 섭렵하리라 강박만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왠걸 비디오였기에 가능했던 불법 복제비디오 혹은 레이저디스크의 빛들이 낡은 프로젝트를 통해 흘러나왔던 그 때에도 사실 그다지 충실한 비디오광은 아니었다. 덕분에 주억거리는 제목들만 늘어나고 봐야 할 영화들만 쌓이며 나는 말그대로 DVD수집에 매달렸고 강의에 필요한 고전영화들과 중국의 해적판까지 두루 소장하게 됐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영화들을 모두 봤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 중에는 욕심에 일본어 자막에 불어대사로 된 <엄마와 창녀>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대신 미국과 일본의 아마존에 내 계정이 생겼으니 말이다.
다시 <옥희의 영화>로 돌아가자면 난 이제 <해변의 여인>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등의 영화를 보고나서 홍상수에게 더 이상의 기대는 한 수 접고 즐기자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복제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옥희로 출연한 정유미의 말처럼 진심으로 신기했고 영화가 참 좋았다. 그들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다만 진심을 담아 했던 연기들이 앙상블을 이루고 멋진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들 바로 그 순간들의 편린들이 빛나는 그런 영화였다.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드러내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순간들을 기어코 드러내어 바래도록 오랫동안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다시한번 정유미의 말처럼 '오랜만에 영화 같은 영화를 본 기분이었다'. 정유미가 처음으로 <옥희의 영화>를 보고 느낀 소회이다. 동감이다.


다시 강릉

그제 강릉으로 돌아왔다. 
아직 바다도 한번 보지 못하고 편집만 하고 있다. 
그래도 좋다. 
불휘님이 선물해준 시집 <생물성>을 조금 읽었다.
여긴 모든 것이 좋다. 
그래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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